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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진정한 창조의 열망은 자신의 근원을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됩니다.”

May.2010 No Comment

진정한 창조의 열망은 자신의 근원을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됩니다.

도영임
카이스트 기능성 게임랩 선임연구원

우리는 가끔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흰 종이 위에 한 편의 시나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우주와 자연과 사람과 사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기도 하고, 남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과 역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틀로 직조하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남다른 성취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은 심리학자인 제게 매우 경이로운 일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합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매일의 나날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텅 빈 도화지를 새로운 경험으로 한 폭씩 채워가는 끊임없는 창조의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무의식 또는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일상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의미 있는 창조의 과정은 오늘과 다른 내일이라는 의식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자리에서 매일 새로움을 밝히며 살아갈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 때에만 비로소 오늘의 나는 내 삶의 한 조각을 새로운 창조의 경험과 놀라운 환희로 가득 채우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를 하고 싶은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빌리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형과 아버지는 탄광촌 파업에 참여하는 중입니다.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로 가정 형편이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빌리가 강한 남자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권투를 배우게 합니다. 하지만 빌리는 권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느 날 권투 연습장 한 쪽에서 발레 교습이 시작됩니다. 빌리는 이상하게 발레에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권투를 하다가도 음악이 들려오면 샌드백을 치는 대신 음악에 맞춰 저절로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빌리는 결국 아버지가 주신 권투 교습료를 몰래 발레 선생님에게 주고 발레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 발레 선생님은 빌리를 왕립 발레 학교에 보내기 위해 오디션을 추진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이 모든 일이 어머니가 남기고 간 피아노 때문이라며 피아노를 부셔 버립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빌리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 텅 빈 체육관에서 혼자 춤추는 빌리의 모습을 남 몰래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왕립 예술 학교에서 오디션을 받을 때 빌리의 독특한 춤을 본 심사위원 중 한명이 이렇게 묻습니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인가요?”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몸 전체가 변하는 느낌이에요. 몸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하늘을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음악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빌리에게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편지를 남깁니다. 어쩌면 어린 빌리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의 모습만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빌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모성 그 자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빌리 자신이 가진 뿌리 깊은 예술적 재능과 열망,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더 깊은 그리움과 지향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빌리는 용기 있게 자기 마음의 부름에 응답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자기의 삶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과연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는가라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열망은 그리 쉽게 일깨워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질문의 과정은 때때로 의식적이기 보다는 무의식적이기 쉽고 빈번히 우연의 모습을 가장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길 모퉁이를 돌다가 어느 날 우연히 나를 부르는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낯설기도 하고 때로는 낯익기도 한 그 목소리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근원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슴 속에 깊은 창조의 열망을 품고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