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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세 번째 꼭지:김 기자의 소소한 공연 관람기. 오디오 비쥬얼 퍼포먼스, ‘천의 얼굴’

July.2010 No Comment

 

 새발 발긔 다래 東京明期月良 서울(경주)의 밝은 달밤에

밤 드리 노니다가 夜入伊遊行如何 밤이 깊도록 놀러 다니다가

드러사 자리 보곤 入良沙寢矣見昆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라리 네히어라 脚烏伊四是良羅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흔 내해엇고 二혜隱吾下於叱古 둘의 나의 것이었고

둘흔 뉘해언고. 二혜隱誰支不焉古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대 내해다마란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래 나의 것이지만

아사날 엇디하릿고 奪叱良乙何如爲理古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삼국유사(三國遺事) 中>>

 

삼국시대 향가 <처용가>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 설화가 함께 전해진다.

헌강왕 5년, 동쪽의 주, 군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바닷가에 갑자기 많은 안개가 끼었다. 이 기괴한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절을 세우자 동해의 용왕이 기뻐하여 자신의 7명의 아들을 육지로 보내 춤을 추게 했다. 이들 가운데 처용은 신라를 돕겠다며 왕을 따라갔고, 왕은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하고 혼인을 시켜주었다. 이 때 한 역신이 절세의 미모를 가진 처용의 아내에 반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그녀를 유혹한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처용은 아내가 역신과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아내의 부정’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단죄하기 보다는 ‘가무’라는 방식을 통해 용서한다. 이러한 처용의 모습에 감동한 역신은 사죄하며 앞으로 처용의 얼굴이 있는 곳은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 후로 사람들은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관용과 포용의 교훈을 담고 있는 이 설화는 그 단일한 소재가 신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재창조 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처용가(處容歌)>란 이름의 8구체 향가 형식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렸으며, 고려시대까지 고려 속요의 형태로 불리다가, 조선 초 궁중악을 기록한 악학궤범(樂學軌範) 기록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김춘수의 <처용단장>과 같이 현대시로, 김소진의 <처용단장>이란 현대 단편 소설로, 유치진이 <처용의 노래>란 희곡으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처용을 모티프로 하는 작품들은 장르를 막론하여 다양하게 변용되고 있다.

2010년 5월,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한 변용의 흐름에 새로운 시도가 하나 더해졌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재학생들로 구성된 희안악극단이 처용설화와 디지털 미디어를 접목한 <천의 얼굴> 공연을 선보인 것. 이는 학제적 연구와 통섭, 기술통합의 견인차로서 디지털 컨버전스 뿐만 아니라 예술 장르 간의 융합과 다원적 문화들의 혼합화를 향해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추세 가운데 융합 창작 공연이라는 종합예술장르를 통해 과학과 공연예술 영역 간의 융합을 꾀하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 표현 양식과 공연제작 플랫폼 구축하겠다는 포부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연 <천의 얼굴>은 새롭다. 처용설화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기존 공연의 한계와 틀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색깔과 매력을 찾아내고 미래의 모습을 공연으로 만들기 위한 희안악극단의 노력이 구석구석 엿보이는 작품이다.

공연의 스토리부터 무대 장치까지 학생들이 주도적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공연의 방식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공연들과는 사뭇 다르다. 공연 속 처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설화 속 처용인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도시 속을 오가고 있다. 고전 속 옛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혼용되어 나타난다.

미디어매체의 활용도 두드러진다. 지금까지의 공연에서 시청각 디지털 매체들은 배우의 연기를 보조하는 수단으로만 주로 사용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보조적 수단으로 쓰이던 이러한 시청각 매체들을 좀 더 무대로 끄집어냈다. 무대에 설치 된 흰 장막의 스크린에는 극을 보여주는 문자들이 타이포그라피 형태로 쏟아졌다. 왕의 행차의 모습을 전면으로 보여주어 무대의 한 장면을 스크린으로 압축시켜 보여주기도 하였다. 성적인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구두나 움직이는 마름모의 이미지들은 줄거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냈다. 영상으로 얼굴을 등장시켜 눈동자를 움직이는 효과를 주어 마치 배우를 바라보는 듯한 장면도 연출해냈다. 지금까지 배경으로써 사용되던 이미지가 배우의 역할, 배우와 어우러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 아예 공연 장면 하나를 대체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천의 얼굴> 공연 전. 분리된 스크린으로 처용가의 한 구절이 보인다.

  사운드 역시 무대 공간 전면으로 끌어왔다. 단순한 배경 음악, 효과음을 넘어 배우의 움직임과 상황에 따라 음악은 변주되었다. 전통적인 음률과 현대적인 느낌의 사운드가 교묘하게 섞여 배우의 무용과 이미지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특히 사운드는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게 관람객들의 일반적인 평이었다.

처음 시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니만큼 전반적으로 각각의 표현 요소들 간의 사인이 맞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며, 사인이 맞더라도 매체들이 집약되어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지 못하고 제각기 따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사이사이에 스토리, 영상 이미지, 사운드,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전통적인 느낌을 잃지 않는 배우의 의상과 배우의 연기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명장면들이 있었다. 한 예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월식을 일으키려는 역신과 이를 막으려는 처용의 전투 장면에서는 월식을 나타내는 두 개의 원이 움직이며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이지 않았다가가 반복되었다. 이러한 영상의 움직임이 점점 빠르게 전개되며 함께 배우의 움직임도 격렬해지고 음악도 고조되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외에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장면,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장면들에서 오디오 비쥬얼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공연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제한된 예산과 공연 일정으로 다소 급하게 무대에 올려 져 희안악극단 학생들이 그렸던 공연이 많이 축소된 형태로 올려 진듯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문화와 기술의 융합을 꾀한다는 목표 아래 설립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과제 스트레스와 프로젝트, 논문의 무수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학생들끼리 ‘의지’ 하나만으로 뭉쳐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잠재력 있는 성과물을 일궈냈다. 그렇기에 희안악극단의 비주얼 오디오 퍼포먼스, <천의 얼굴>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천의 얼굴> 공연 준비 중인 희안악극단.

 

김민혜 기자(caero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