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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라이프] 제 3기 카이스트 창조경영 최고경영자과정 일본 워크숍

June.2013 No Comment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지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카이스트 창조경영 최고경영자과정 원우들은 일본 워크숍을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창조경제가 시대의 화두로 뜨겁게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창조경영 최고경영자과정을 통해 창조경제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원우들에게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출발에 앞서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하신 이동만 문화기술대학원 원장님으로부터 이번 워크숍의 테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그 문화적 전통을 오랜 기간 공유해 왔습니다. 초기에 백제문화가 일본으로 넘어가 영향을 주고, 이후 일본에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백제의 문화적 코드는 일본 전통문화의 이곳저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워크숍 장소로 선택한 교토는 일본에서 그런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백제가 통일신라 이전부터 교류를 통해 일본에 한국의 문화를 전해주었고 일본 왕가를 중심으로 그 문화를 이어온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교토의 여러 역사 유적 중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사찰과 정원은 방문하여 이들을 살펴봄으로써 일본 정원문화에서 백제 문화의 원형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양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가운데 최고경영자과정 원우들과 함께 문화의 소중함과 그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2박 3일의 알찬 일정,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통찰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 창조경영 원우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 현장을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 제 1일 >

오전 7시, 인천공항 출국장에 집결한 일행은 KE723편을 타고 일본 오사카로 출발했다. 관서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간사이 공항은 오사카, 교토, 나라 등 일본의 고대 및 중세 역사의 주요 지역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내에서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마치고,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히라카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첫번째 방문지는 히라카타의 백제사적공원이었다. 오사카에는 단 두 곳의 국가 지정 특별사적이 있는데 오사카 성과 더불어 백제사적공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의 백제사적은 옛날 백제의 절터가 그대로 남은 유일한 곳으로서 익산의 미륵사를 연상시키는 동서탑의 배치, 그리고 그를 둘러싼 회랑으로 미루어 전통 백제의 사찰건축양식과 동일함을 알 수 있었다.

백제사적 기념비

히라카타의 백제 관련 유적은 삼국시대 통일 전쟁 전후로 그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의 왕자인 선광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 조정에 출사, 일본에서 정착하였고 이후 그 후손들이 일본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으며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히라카타의 백제왕 신사와 백제사적공원은 그 시기에 일본 황실로부터 제공받은 봉토를 바탕으로 백제인들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기 위해 건립한 신사와 사찰인 셈이다. 기념비에 적혀 있는 사실 및 당시 정황을 기록한 사료에는 두 나라의 이러한 관계와 백제사의 건립 배경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백제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근거를 사적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본격적인 워크숍 탐방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관계로 일행은 히라카타에서 이동하여 교토 인근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첫날 숙식은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 주변. 이 호수는 규모에 있어서 서울시 보다 크다고 하니 그 넓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와호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숙소는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 손님들에게 다도, 온천 등 일본 전통문화를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쓴 흔적이 보였다.

저녁식사는 관서의 명물, 가이세키 요리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정식으로서 원래는 사찰에서 스님들이 본 식사 전에 조금씩 음식을 맛보는 에피타이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때문에 음식의 양이 작고 종류별로 골고루 맛을 보게 한 후 마지막에 밥이나 된장국 등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막부 시대를 거치면서 요리점이나 연회에 나오는 요리로 발전되어 술맛을 돋구기 위한 요리, 안주가 추가되었고 시각적 요소 특히 계절 재료와 식기를 감상하는 것도 가이세키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워크숍 첫날은 한국에서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백제 조상들이 머물렀던 곳에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제 2일 >

워크숍 두 번째 날, 일본 전통문화와 백제의 옛 문화를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일행은 일찍 숙소를 떠나 일본의 고도, 교토로 향했다. 개별 유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가이드로부터 교토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전해 들었다.

교토는 일본 천 년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금으로 칠한 법당이 있는 금각사,  일본 5대 선종 사찰 중 최고로 알려진 덴류지, 임진왜란과 관계 깊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찰인 코다이지 등 수많은 관광지들이 있다. 칸무왕이 당시 수도였던 나라에서 불교세력이 급격하게 커지자 이를 경계하여 784년 나가오가쿄로 수도를 옮기고, 10년 후인 794년 다시 지금의 교토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1868년 지금의 도쿄로 옮길 때까지 1000여년간 일본의 수도이며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미미즈카 전경

일행은 미미즈카, 귀무덤을 첫번째 행선지로 삼았다. 전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무덤인 이곳은 조왜전쟁 즉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선인의 귀를 일본으로 가져온 것을 묻은 장소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장군들의 전공을 확인하기 위해 코를 베어오라 하였으나, 코는 베기 어려워, 베기 쉬운 귀로 대신 하였다고 한다.

인근에 교토의 여러 유명 문화재가 있는 가운데 귀무덤은 동네 어린이 놀이터의 한 켠에 작게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그냥 방치된 듯한 귀무덤의 모습이 안타까왔다.

방향을 시가지의 북쪽으로 돌려, 두번째 찾아간 곳은 시모가모진쟈 인근의 “도판 명화의 정원”이라는 곳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안도 타다오의 독창적인 건축 스타일과 더불어 도판화를 전시하는 갤러리라는 점이 독특한 공간이었다. 참고로 도판화는 원화를 촬영한 후 도자기에 현상하여, 부조 형태로 전시하는 도자기와 예술을 복합한 새로운 장르이다. 명화의 정원은 빛, 바람, 물, 소리 등의 자연 속에서 세계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옥외 미술관으로 비대칭적 벽 틈으로 건축 구조물이 입체적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치밀한 설계 때문인지 폭포소리를 들으며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명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건축이 갤러리라는 공간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조화를 이루며 그 감상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대 일본의 거장의 작품을 뒤로한 채, 교토의 상징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유적지인 금각사로 향했다. 명화의 정원에서 가모가와강을 건너 서쪽 방향에 있는 금각사, 킨카쿠지는 임제종 쇼코쿠지파의 선종 사찰로서 공식적 이름은 “로쿠온지”이지만 금박을 입힌 사리전의 누각이 유명하여 킨카쿠지, 황금의 집이라고 불린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1397년에 다른 장군으로부터 할양받아 이후 10년간의 공사를 거쳐 당대 최고의 건물과 정원을 완공했다 한다.

금각사에서

킨카쿠의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를 대표하는 지센카이유식 정원으로 조성되었다. 즉 중앙에 연못이 있고 주변에 산책로를 감싸듯 배치해 놓은 형태를 말한다. 서쪽의 기누가사야마산을 배경으로 한 이 정원은 쿄코치 연못을 중심으로 지방의 영주들이 헌납한 돌들을 쌓아 만들었다고 한다. 1994년에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일본의 불교는 서기 552년, 백제의 성왕이 일본의 켄메이 천황에게 불상, 경전 등을 전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일본 왕가는 삼국 전쟁 때 백제에 약 3만명 정도의 병력을 한반도에 보내기도 했다. 나당 연합군에게 참패한 이후, 결과적으로 신라의 통일은 일본에 신라에서 유행하던 불교 종파가 전파된 계기가 되었고 이것이 곧 화엄종이다.

국가의 안녕과 번영 등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한 화엄종의 영향으로 일본에 도다이지 같은 거대 사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향은 수도를 교토로 이전한 뒤에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 12세기에는 중국으로부터 선종이 유입되어 당시 사무라이 계급의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명상과 훈련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이 무사의 정신세계와 비교적 일치했기 때문이다. 15세기 이후 오다 노부나가 등 통일 정권은 불교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거대 사찰을 국유화하거나 회유하여 정치에서의 불교 활동을 실질적으로 소멸시켰다. 이번 워크숍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유산들은 이러한 정치문화적 배경에서 지어진 것으로 한일의 문화적, 역사적 이슈가 일본의 불교 발전과 정치적 흐름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교토 시내에서 조금 서쪽으로 떨어진 아라시야마와 시가노 지역은 벚꽃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이곳의 랜드마크 격인, 귀족 문화와 대나무 숲길로 유명한 텐류지를 방문하였다. 이곳은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 텐류지파의 대본산이며 전성기에는 아라시야마 전 지역을 경내로 삼을 만큼 큰 규모였다고 한다.

텐류지의 소겐치 정원

텐류지는 1339년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고다이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교토의 5대 선종 사찰 중의 하나로 사찰과 정원이 초기 모습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주변의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치센카이유 양식으로 조성되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 특별 명승 제 1호로 지정되어 사랑받고 있다.

연못과 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텐류지의 소겐치 정원은 여러모로 신라 경주의 안압지를 떠올리게 했다.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 문무왕 당시에 조성된 인공 연못이고 텐류지는 1339년에 지어져 시기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백제와 신라의 영향을 받은 듯, 연못의 모습이나 전면을 향한 누각의 위치 등이 다르면서도 닮은 느낌인 점이 흥미로왔다.

일행은 아라시야마를 떠나 다시 킨카쿠지가 있는 교토 시가지 부근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찾아가는 곳은 료안지. 일본 중세 무로마치 막부의 무인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도쿠다이지의 별장을 개조해 지은 선종 사찰로서 가레산스이식으로 조성된 방장 앞의 정원, 세키테가 유명하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아 감상하는 세키테, 돌정원은 동서 25m, 남북 10m의 직사각형 정원이었다. 연못이나 수목 등을 사용하지 않고, 흰 모래와 15개의 돌, 이끼로만 꾸며졌다. 가레산스이식 조경에서는 모래는 바다나 호수 등 물을 상징하고 돌은 섬과 산을 뜻한다고 한다.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한 개는 반드시 숨겨져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적당할 때 만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정원을 Zen Garden이라고 부르면 일본(동양) 선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백제와 신라의 영향을 받은 텐류지의 소켄치 정원과 비교하여, 료안지는 그것을 발전시켜 보다 일본 독자적인 문화로 완성한 정원이라는 느낌이다. 안압지와 소켄치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조경을 하여 부드럽고 아늑하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면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은 자연을 압축하여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료안지에서

이틀동안, 백제사적에서 료안지까지, 그동안 책이나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던 백제 문화의 흔적을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백제 건축물과 조경의 특징이 직접적으로 남아있는 백제사적을 비롯하여 자연과의 원만한 조화를 추구했던 치산카이유 양식의 텐류지, 마지막으로 그것을 나름의 문화로 발전시킨 가레산스이 양식의 료안지까지, 백제의 문화코드는 일본 문화의 원형이 형성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했다.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서 천오백년을 지내온 우리 문화를 다시 만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시내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출발할 때보다 훨씬 친밀한 느낌으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 제 3일 >

저녁 귀국 비행기 시간 전까지, 워크숍의 마지막 날 일정을 위해 일행은 부지런히 하루를 맞이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사찰인 코다이지. 뒤를 이어 막부를 장악한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웅장한 건축물을 지었으나 화재 등 재해를 입어 현재의 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다도인데, 이곳 코다이지에는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시구레테이와 카사테이. 시구레테이는 일본 차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센노 리큐가 지은 다도 공간으로 이곳에서 일반인들도 일본 전통 다도를 체험할 수 있다.

다도 체험

이틀 동안의 여행의 피로를 정갈한 한 잔의 차로 씻어 내고 일행은 마지막 방문지인 동지사 대학으로 향했다. 이곳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사후에 유명해진 윤동주와 그를 대중에게 소개한 정지용 시인이 학창시절을 보낸 장소이다. 정지용은 윤동주보다 먼저, 1923년에 이곳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1929년 귀국하여 기자, 작가 생활을 했다. 윤동주는 1942년에 일본으로 와서 처음에는 도쿄에서 공부하다가 후에 교토 동지사 대학 영문과로 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된 윤동주는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안타깝게도 옥사하고 만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던 인연으로 시인 정지용이 1947년 윤동주의 유작을 경향신문에 소개하면서 윤동주의 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시인의 추모비가 동지사 대학에 나란히 놓여져 있는 것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윤동주, 정지용의 추모비

동지사 대학을 끝으로 일행은 교토를 뒤로 하고 출발 장소인 오사카로 향했다. 바로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지 않고, 원래 일정에는 없었으나 원우들의 요청에 의해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 성을 방문하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 성을 지어 전략적 거점으로 삼은 뒤에 급속도로 발전했다. 축성 당시 하루에 수만명이 동원되었는데도 완성까지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사카 성을 배경으로

오사카성 방문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모든 공식 워크숍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다. 해질 무렵 간사이 국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별다른 문제없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2박 3일의 일정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우리에게 많은 추억거리와 경험을 남겨 주었다. 카이스트 창조경영 최고경영자과정의 다음 해외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