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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CT밖의 CT이야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특별전”을 다녀와서

December.2013 No Comment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었던 것을 정리하여 지난 11월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였고,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내년 2-3월까지 이어지는 전시인 만큼 방학 중에 여유롭게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빨간 벽돌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무게가 느껴졌다. 전시 구획공간은 물론이고 이들을 잇는 복도들도 엄청난 규모로 비어있다. 흡사 공장 같은 공간에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특징이 되어버린 듯 하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현대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복도 곳곳에 세로형 터치스크린이 보였는데, 이러한 멀티미디어 부스를 통해 미술관과 전시의 소개를 비롯하여 관객참여형 사진찍기 기능을 제공하였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이러한 형태가 미술작품의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터렉티브 작품과 편의시설의 경계는 모호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특별전은 개관 성격에 걸맞게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묶는 대규모 전시로 꾸며졌다. 개관 기념 사진전을 비롯하여 ‘시대정신’에서는 여러 작가들의 회화, 조각들을 다루고 있고, 현장제작 작품으로 대규모 설치 작품 3점이 전시되었다. 여기에 연결-전개. (Connection-Unfolding)와 알레프 프로젝트 (The Aleph Project)라는 이름의 기획전시가 더해졌다. 특히 ‘알레프 프로젝트’는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다매체를 수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계 생명체

전시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현장제작 프로젝트, 연결-전개, 알레프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기계와 생명체의 간극을 탐험하는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 ‘기계 생명체’라 이름할만한 몇 가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우람,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Opertus Lunula Umbra, 2008

http://vimeo.com/46804683 (2008년 전시 기록)

최우람 작가는 생명체를 본뜬 정교한 기계 설치 작품으로 유명하다. 천장에는 고대 벌레모양을 닮은 육중한 금속 조각이 매달린 채 숨을 쉬듯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주장처럼 기계 스스로 생성하고 번성하여 하나의 생명체로 진화하는 순간이 도래할지 모를 일이다. 기계-생명의 모티프는 수많은 예술형태로 표현되었지만, 본 작품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흔치않다. 작품이 담고 있는 개념과는 무관하게 형태와 움직임의 정교함은 작품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필립 비슬리, <착생식물원>

Philip Beesley, Epiphyte Chamber, 2013

http://vimeo.com/80905751 (서울관 전시 기록)

긴 줄의 관문을 넘어서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두운 방에 들어서면 영화 <아바타>에서 봄직한 빛의 정원이 펼쳐진다. 오묘한 빛을 뿜어내는 수많은 가지들은 풀벌레소리같은 작은 소리들을 내면서 살아 숨을 쉬는 듯 관객의 자극에 반응하며 움직인다. 최우람 작가의 고대생명체가 차가운 기계의 느낌이라면, 이것은 여리고 여린 심해저의 수중 생물을 닮아있다. 작품에 사용된 수많은 장치들은 관객이 이름모를 생명체에 주저없이 손을 뻗어 만지막 거리며 장난칠 정도로 매끄럽고 은밀하게 은폐되어있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 <정교한 실험실>

Scale Free Network, The Elaboratorium, 2013

http://vimeo.com/74072698 (2012. 호주 멜버른 전시)

SFN(Scale Free Network)이라 하는 작가그룹은 현미경을 미술관으로 가져왔다. 그 유리경을 통해 관객을 미시의 세계로 이끈다. 본 작품이 과학실험실이 아닌 미술관에 놓이게 되는 경계는 매우 모호해보인다. 하지만 <정교한 실험실>에서는 실제 생명체와 생명체를 흉내낸 가짜의 혼합을 통해 미술 작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과학실험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시뮬레이션’은 미술과 과학, 생명과 기계의 간극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가변공간

전시관을 관통하며 떠오르는 또다른 단어는 ‘가변공간’이었다. 약간의 구조물을 변형하여 미술관 갤러리 공간을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앞서 살펴본 ‘기계 생명체’가 ‘나’의 존재에 관한 것이라면, ‘가변공간’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것이다.

 

서도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2013

미술관안에는 2층에 걸쳐 자연광이 비취는 큰 개방공간인 ‘서울 박스’가 있다. 서도호 작가는 ‘서울 박스’ 에 투명한 천을 가지고, 실제크기의 집을 매우 정교하게 구현하였다. 제목에서 처럼 집안에 또다른 집이 있다. 설명에 따르면, ‘미술관안에 서울박스안에 양옥안에 한옥이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교함을 보고있자면, 건축 설계도면과 같은 실측 자료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가상의 홀로그램 영상 사이를 옮겨다니는 모습을 합성한 착각에 빠져든다. 개념적인 가상의 이미지를 정교한 손맛으로 재현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개념 이전에 제작술의 치밀함에 먼저 놀라게 된다.

 

하태석, <떠도는 기하: 콜렉티브 뮤지움>

Hovering Geometry: Collective Museum, 2013

http://www.youtube.com/watch?v=gGM1-cXihWk

하태석 작가는 관객이 참여한 공동의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름하여 ‘집단적 박물관’이다. 중앙에 터치 스크린 제어장치를 놓고 투명 흰색막 여러 개를 세로 형태로 늘어놓았다. 관객은 각자의 기호에 맞게 값들을 선택하면 즉각적으로 영상에 반영되어 관객 주변을 둘러싼다. 작가는 집단지성을 통해 가상의 공간에 가변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마크 리, <10,000개의 움직이는 도시>

Marc Lee, 10,000 Moving Cities-Same but different, 2013

http://www.youtube.com/watch?v=8ixjoDD9hnc (2010 전시)

작가 마크 리는 관객이 입력한 도시의 이름을 바탕으로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된 도시의 이미지를 공간 안에 투사한다. 이로써 동일한 공간을 다른 이미지들로 바꾸어 놓는다. 앞서의 작품이 개별을 모아 총체를 행해 나간다면, 본 작품은 전체에서 특징적 개별을 지향한다. 즉 전자는 공간을 응축하고, 후자는 공간을 해체한다. 관객은 백색의 사각기둥 위에 맻힌 도시들의 이미지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공간화된 도시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시각의 공간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작품들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가상화 기술을 이용한 연결

‘기계생명체’와 ‘가변공간’이라는 두 단어는 ‘연결’이라는 단어로 다시 한번 요약된다.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가상화’를 통한 ‘연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물질과 비물질, 자연과 인공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본 대학원의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HCI를 비롯한 가상의 공간, 정보시각화, 사회망연구 등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가상화는 무언가를 변형하여 이용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 가상화가 가능해야 새로운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 보통 ‘정보’의 형태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가상화의 편의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앞서의 모든 작품은 대상의 ‘정보’를 온갖 기계적 기교, 즉 문화기술대학원의 주된 연구방법론과 거의 흡사한 방식들을 동원하여 가공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은 ‘자연’이라는 대상을 앞마당에 가져오는 것과 비슷하다. 가짜나무도 심고, 인형으로 된 동물도 놓는다. 한때 이러한 모조품은 실재 자연에 못 미치는 싸구려로 인식될 뿐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실재 자연이 가지지 않은 ‘인공정원’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예술로 부른다.

 

복잡계 Complex Systems

<지식지도: 알레프 프로젝트 해제 시각화>

Knowledge Map: Decoding The Aleph Project

전시를 둘러보다가 한쪽 면을 차지하는 독특한 설치물에 눈길이 갔다. ‘지식지도’라는 이름으로 알레프 프로젝트를 단적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보통 사회관계망 연구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여러 개념들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네트워키즘’과 ‘복잡계’를 바탕으로 각 참여 작가들을 연결하고 있다고 한다. 즉 알레프 프로젝트는 미술가뿐만 아니라 음악, 과학, 공학, 건축 등의 다양한 작가들이 모인 총체전시였다.

복잡계 이론은 융합, 자기 조직화, 집단 지정, 망, 진화, 패턴인식, 비선형, 동적인 것들과 관련된다. 자연스럽게도 이 모든 단어들은 문화기술대학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즉 문화기술대학원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핵심주제는 한국의 대표적 미술관에서의 기획 전시의 그것과 닮아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문화기술대학원이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지금의 시대는 기술이 예술을 뒷받침하는 시대를 넘어, 기술자체에 대한 고찰을 예술작품이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 12월

박성일 hakse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