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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CT밖 CT이야기] ‘괘념;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여러 의문을 동시에 머릿속에 걸다.’

February.2017 No Comment

괘념;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여러 의문을 동시에 머릿속에 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 진 원 교수

 “논문이란 것이 그런거 아닌가요? 평이하게, 검증이 용이하도록, 그리고 편향되지 않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은 자료를 잘 정리해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 그런 것이 과학적 연구 방법이라 한다면, 이런 방법은 인문학 연구나 예술 연구에도 적용됩니다. 연구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뭔가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하죠? 보통?”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이진원 교수는 특별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경기과학고, KAIST 화학과를 거쳐 석사 과정 중 중퇴를 했다는 것. 그리고 이진원 교수가 중퇴를 결심한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 전통 음악 분야에서 발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는 것.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건 고등학교때 부터에요. 경기과고 2학년 때 단소를 접했죠. 그 때 들었던 첫 번째 의문은 왜 전통 악기는 악보에 씌여 있는 데로 연주를 하지 않는거지? 피아노는 악보데로 치면서 왜 우리 악기는 정간보에 있는데로 연주하지 않을까? 그 때 악보를 보면서 국악을 들었는데, 녹음된 테잎에서 소위 대가라고 불리는 선생님들조차 정간보에 맞추어 연주하지 않았어요. 오늘에 와서야 그게 다 우리 민족의 즉흥이고 창조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때는 정립이 안된건가 하고 생각했어요. 혹은 연주 방법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건가? 라고 무식한 생각을 했었죠.” 그 후 이진원 교수는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용돈이 생기는 데로 고악보를 사러 다니고, 발품을 팔아 전통 음악 음반을 구하러 다녔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국악을 배워보고 싶어서, 미리 대금도 배워보고, 아, 학교에 들어가서는 내가 전통음악동아리 ‘떠이어니레’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활동하는가? (웃음) 당시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 지금은 목원대 교수님으로 계신 신흥재 선생님께 대금을 계속 배우면서 퉁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학부 3학년때는 퉁소에 관한 글을 썼어요. 근데 그 때 퉁소에 대해 정리가 너무 안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던 이보형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갔었어요.” 하고자 하는 것에 관한 명확한 이해와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이진원 교수는 일침했다. 만약 나라면,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하여 일면식도 없는 전문가를 찾아가 내가 이런 연구를 하는데 자료를 줄 수 있겠냐며, 그런 포부를 당당히 밝힐 수 있을까? 결국 이진원 교수의 연구는 지난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나 국악을 연구하고 있는 지금이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주제, 거창하게 주제라고 할 것도 없이 작은 궁금증이라 할지라도, 팩트를 찾아내고, 관련된 기본 지식들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이해하여 머리 속에서 이해한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이 조합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선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고 싶은데, 그렇다면 일단 마크인덱스를 찾아서 그 물질이 기존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파악하겠죠. 그런 다음에 내가 생각한 화합물과 관련되어 어떤 논문이 발표되었는지, 누가 논문을 작성했는지, 합성 방법은 무엇인지를, 아마 내가 화학 분야에 계속 있었다면 이 과정을 하고 있었겠죠. 근데 이런 과정은 지금 내가 한국예술이론을 연구하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연구로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잖아요. 혹여 옛날에 다른 사람이 미리 한 연구였으면 어떡해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없는 자료가 무엇인지 찾고, 없었던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방법을 새로이 변화시켜 찾아내고, 혹은 실험하고, 결과를 보고하고. “융합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는게 아닐까요?” 결국 융합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진원 교수가 의미하는 바는 기존의 지식을 주도면밀하게 찾아내서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한 다음, 그 과정 중에 내가 머리 속에서 이해한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이’ 조합해나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 그 길에 기존에 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융합의 출발이라는 것.


GSCT
(사진1.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점심 식사를 교수님과 함께하며)

 이진원 교수는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취미가 전공이 된 예라 행복한 사람이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괘념(掛念)알아요? 걸 괘(掛), 생각 념(念). 사람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마음을 다해 오래 생각을 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것.” 직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책을 폈는데, 내가 필요한 부분이 한 번에 찾아졌던 순간. 혹은 새로운 방법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갑자기 떠오를 때. 근데 그런게 사실은 갑자기 나온게 아니거든. 내가 필요한 사고에 대해 마음적으로,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을 때 튀어나오는 거지. 책을 폈는데 내가 필요한 부분이 찾아졌던 것은 사실 수백권의 책을 펴봤다는 거고, 내가 오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있는 곳만 기억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런거 아니겠어요?” 노력이 기저에 깔려야하고, 지식이 몸에 새겨져서, 스스로 내 머리 속에 뭘 걸고 다닐 것일지를 계속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좋은 것을 걸기 위해 매진해야한다는 것.

 순간 나는 교수님께 이렇게 되물었다.
“교수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요? 그럴 때도 있지 않나요?”

 “아이, 그럴 때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행이다. “나는 지적 유희를 위해 추리소설 읽는 것을 좋아해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나 에르퀼 푸와르같은 추리소설부터 무협소설도 좋아하지. 무협소설사를 정리해서 한국무협소설사를 썼었어. 지금은 중국무협소설을 번역하고 있고, 또 최근에는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서, 예전에 수입이 되었는데 공개가 되지 않은 영화들에 자막을 다시 넣어서, 물론 지금은 필름이 없어진 영화들 위주로 자막을 다시 넣어서 상연하는 토요희귀필름 콜렉션을 현재 예종에서 진행하고 있기도 해요. 고음악 자료를 찾으려다가 한국영화 자료도 구하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한국영화음악사 책도 쓰게 되고. 전통 음악을 하니까 전통 음악 음반이 굉장히 중요한 자료에요. 그걸 90년대부터 수집했는데, 지금은 음반 콜렉터로도 활동하고 있고. 그러다가 음반 커버 아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웃음)”

 어느 책에서 ‘실명제공부’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차 없이 밝히는 태도, 그 속에서 공부의 한 갈래가 자생한다는 것. 오늘날과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 도대체 내 것이 무엇이고, 네 것이 무엇이겠냐만은, 그리고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처럼 실명이란 익명과 구조의 연루 속으로 소실될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제 나름의 이치 또한 있다는 것, 그 또한 잘 알겠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진원 교수가 과감하게 내 것을 선택하고 집중했듯이, 적어도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는 능력, 그 능력에 의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을 불어넣어주는 태도야말로 나 스스로 자발적 자세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그럴 때가 되어야 궁색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 지 현 기자
jh.jou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