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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매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했던 인간의 특징을 증폭시키는 것일까

May.2019 No Commen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 및 발명품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우리가 주변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더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현재의 기술 동태를 살펴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번 고에서는 이러한 인간 삶의 변화가 진정 기술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삼성 폴더블 폰을 예시로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패턴 혹은 삶을 바꾸는 모습의 예를 살펴본 후, 마셜 매클루언(맥루한)의 사상을 통해 기술을 통한 삶의 변화를 예측한 사상 한 가지를 훑어본다. 마지막으로, 인간 삶이 기술에 의해서 근본이 변화하는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며 이번 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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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폴더블 폰이 베일을 벗었다. 펼치면 태블릿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가 되고 접으면 일반 스마트폰 사이즈가 된다. 그런데 애플이 스마트폰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에게 가져온 변화만큼 폴더블 폰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폴더블 폰에 적합한 새로운 인터페이스 및 그 사용도, 유용함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기존의 스마트폰에서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 폰이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어 보인다. 강한 내구성은 물론이고, 변화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맞는 어플리케이션 및 레이아웃도 가져야 하며, 화면 접히는 부분에 생기는 굴곡, 그리고 300달러에 육박하는 가격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삼성이 삼성전자 뉴스룸을 통해 말한 것처럼 폴더블 폰으로 인하여 스마트폰의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폴더블 폰에는 ‘폴더블’ 이라는 새로운 특성이 분명 존재하고, 이를 이용하기 위한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맞춰 사람들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법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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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인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처음에는 해당 기술에 강한 반감을 표현했지만, 점점 적응해 가며 기술을 삶으로 받아들여왔다.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다시 말해 사람들이 얼마나 그 기술에 적응하는지에 달려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미디어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았을 때 미디어에 대한 과격한 사상을 낸 사상가가 있다. 마셜 매클루언은 그의 책 ‘미디어의 이해’를 통해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임을 설명한다. 그에게 미디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컴퓨터, TV 등의 영상 혹은 전자 매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모든 도구를 통칭한다. 이에 전구, 전차, 도로, 종이 등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매개체 혹은 물체 또한 미디어로 보았다. 매클루언은 우리 주변의 각종 미디어 그 자체가 그 안의 콘텐츠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철저히 기술 자체를 중심으로 가져와, 미디어의 내용은 미디어와 분리될 수 없으며 특정 매체로부터 얻는 정보 습득 방식이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에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그의 삶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이론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유명했던 전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학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의 이론이 현대에 와서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스마트폰을 필두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는 다양한 미디어 및 기술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긴 과거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간직했던 기술 및 발명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미디어는 우리를 기술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단적인 예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추천 서비스는 우리가 기존에 재화라 인식하지 못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장한 서비스이며, K-pop의 성장은 유튜브 및 유튜버라는 매개체, 미디어 없이는 지금과 같은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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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클루언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전자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뇌를 두개골 밖에 두고 신경을 피부 밖에 내놓는다거나 전기 미디어가 인간의 중추신경 조직을 확장해 부족적인 그물망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지구를 하나의 마을처럼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전기의 발전으로 인해 정보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동시간 전송되며, 그 범위는 전지구적이 될 것이라 보았다. 전기망이 일종의 중추 신경계처럼 지구 곳곳을 연결하여 사람들은 타 지역 혹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정보 접근은 권력을 탈권력화시킬 것이라 주장했다. 이렇게 매클루언은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보편화 되기 전 처음으로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언급함으로써 앞으로 등장할 기술로 인해 세계가 긴밀히 연결될 것을 예측해냈다. 이런 예측이 현대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그의 미디어에 대한 통찰을 더 높이 사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말대로 매체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걸까.
매체의 등장이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지만, 그것이 기존에 없던 모양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꾼다기보다 기존의 우리 사회 그리고 인류의 특징을 더욱 증강시켰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지 모르겠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계 곳곳이 하나가 되어 연결된 것은 맞다. 맥루한이 언급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세계 어느 곳에서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실시간 뉴스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과거부터 계속 있어왔었다. 타국을 궁금해하고,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의 열망이 존재한 순간부터 인류는 항해와 도보를 통해 끊임없이 모르는 세계를 찾아 떠나고 탐구해왔다. 이러한 욕망은 실크로드, 설탕교역길, 노예 무역로 등을 통해 계속 존재해왔고, 과거 인류도 그 지평을 계속 확장해 나가려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류는 기계를 통해 ‘마침내’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세상 곳곳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려는 인류의 열망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현실화되고 증폭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의 등장도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보자.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각종 메신저를 사용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락하고, 스마트폰 안의 내장 앱을 통해 영상, 음악, 그림 등 각종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의 행동은 기존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행동일까? 오히려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편지로 서로의 소식을 물어왔고, 신문, 책 등의 매체로 각종 콘텐츠를 소비해왔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연락 및 콘텐츠 소비가 빨라지고 많아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 전에 아예 하지 않던 행동을 스마트폰으로 인해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보기에 새로워 보이는 행동과 사회 현상은 사실 원래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던 각종 행동 및 행위들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좀 더 증폭된 방식으로 발현된 것일 수 있다. 인류는 결국 자신들의 내재된 욕망 혹은 특징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 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디지털 시대의 미학 수업시간에 매클루언의 사상을 접하고 그를 비평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개인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수많은 미디어를 모두 예측하고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미디어 자체에 던지는, ‘과연 미디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사람과 기술을 동시에 연구하는 CT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것 같다. 미디어에 들어가는 기술을 연구하고, 어떻게 기술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지 고민하는 CT에서 한 번쯤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있는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게 도와주는 것인지 고민해보고 싶다는 취지에서 이번 기사를 작성했다.

김태희 (hayleyy321@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