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T REVIEW

[CT Review] 바이닐&플라스틱

April.2020 No Comment

최근의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공신력 있는 차트인 빌보드에서 판매량 집계 시 스트리밍의 비중을 높이고, 나아가 유튜브 조회수까지 반영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런 와중에 바이닐(LP)의 판매가 성장세라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거의 공짜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음반을 구매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문화기술을 연구함에 있어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본 기사에서는 이태원에 위치한 체험형 바이닐 샵 ‘바이닐&플라스틱’을 방문함과 동시에, 스트리밍 시대에서 음반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1

바이닐&플라스틱
‘바이닐&플라스틱’은 현대카드에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음반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설치된 CD플레이어와 턴테이블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고, 여러 팝업스토어와 이벤트 또한 수시로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음반 판매를 통해 수익을 꾀한다기보단 기업 차원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6호선 한강진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바이닐&플라스틱’을 어느 금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1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끈 건 인테리어였다. 천장은 붉은 색의 배관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고, 벽면은 마감이 덜 된 듯한 느낌의 콘크리트와 매끈한 타일이 공존했다. 중앙에는 물건만을 나르는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 바이닐이 지닌 빈티지한 감성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1

1층은 바이닐의 판매와 큐레이션, 그리고 턴테이블을 통한 청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르 별로 구분된 바이닐들은 한눈에 봐도 그 양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메인스트림 뮤지션 뿐만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이름들까지 보였다. 가격은 현대카드로 결제 시 20퍼센트 할인이 들어가 비교적 합리적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1

청음을 위한 공간은 밖이 내다보이는 창문벽 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 음반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고 ‘바이닐&플라스틱’ 측에서 선정한 200개의 음반 중에서 1회 3장까지 선택이 가능했다. 음반 리스트는 클래식 앨범과 신보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정기적으로 교체되는 듯 했다. 턴테이블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상주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1

오랜만에 듣는 바이닐 소리는 따뜻했다. 선명도 면에선 디지털 음원보다 부족하지만, 그 아날로그적 소리를 들을 때면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지곤 한다. 완전한 디지털 세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리가 아니더라도, 회전하는 판 위에 직접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려 플레이하는 일은 스마트폰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감을 준다.

1

2층은 CD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이닐&플라스틱’의 플라스틱이 CD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 CD 역시 청음할 수 있는 CD플레이어가 군데군데 놓여 있어 지정된 음반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창가 자리에 있는 2인용 플레이어는 커플들을 위한 것 같다. 2층 한 켠에는 카페가 있어 음료와 간단한 간식을 구매할 수 있게끔 해 놓았다. 가끔 있는 파티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디제이 부스 또한 DVD 코너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피지컬 카피에 대한 단상
앞서 말했듯이, ‘바이닐&플라스틱’은 1차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반시장의 확대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시대에 따라 지배적인 매체는 계속해서 바뀌는데, 이미 흘러간 바이닐과 CD를 붙잡고 있으면 뭐하냐고 말이다. 하지만 바이닐, CD와 같은 피지컬 카피에는 스트리밍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이닐&플라스틱’을 운영하는 현대카드 측은 “오랜 기간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공연을 주최하면서 바이닐을 비롯한 음반시장의 규모와 현황이 해당 사회가 음악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주요한 바로미터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를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은 그 음악에 음반 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건 사회가 음악과 음악인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말이다.
현재의 스트리밍 시스템에서 한 곡의 값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이를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히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보통은 자신이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곡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된다. 이 경우에 음악은 인스턴트처럼 여겨진다.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갔는지는 상관없이, 그저 무한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 플레이리스트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음반을 구매하게 되면 다르다. 제 돈을 주고 사왔기 때문에 어떤 책임감이 생긴다. 실물이 존재하는 슬리브, 판, 부클릿을 가지고 놀다 보면 이전에 없던 애착 또한 생긴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때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곱씹게 된다. 사실 음반은 구매해도 정작 듣는 건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나은 감상을 위해 공짜를 마다하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본 기사를 읽었다면 ‘바이닐&플라스틱’에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돈이 없을 때 놀기 좋은 장소니까. 친구 혹은 애인과, 아니면 혼자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청음도 해보고, 카페에 들렸다가 나오는 길에 기념으로 음반을 한 장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한 말은 사실 비약이 심하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

박동주 (pdj333@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