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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탈진실 시대의 미디어 기술

June.2020 No Comment

지난 4월 11일 이후 20일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돌연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20일 동안 한국의 한 언론사에서는 김정은이 심혈관 수술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고[주1], 이어서 미국의 CNN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하여 김정은이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으며, 이후 유튜브 채널부터 국회의원 당선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이 죽었거나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에 이상이 있는 상태일 것이라는 강한 추측 혹은 확신 어린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20일이 지난 5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여하여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 모른다’, ‘건강한 모습은 조작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약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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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탈진실의 사전적 정의.

거의 촌극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은 강력한 미디어에 둘러싸인 오늘 날의 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살고 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일까? 짧지만 까다로운 이 질문은 점점 대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현실은 다면적인 동시에 동적이다.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여러 각도와 시점(timing)에서 바라볼 때 드러난다. 반대로 말하면, 제한된 각도와 시점에서의 시선은 사실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또한 여러 각도와 시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더라도, 대상이 되는 사안 자체가 이미 날조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면 객관적인 사실을 얻어내기 어렵다. 앞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져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시선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 속에서 제한되기 쉽다. 언론에서 소셜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를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자의 성향이나 관심사, 사용 패턴, 검색 기록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과 같은 예측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사용자의 관심사와 기호를 추정, 어떤 정보를 얼마나 노출시킬지를 선별한다.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들을 추려낼 단서들을 하나씩 수집하고,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정보 편식은 저녁 메뉴나 여행지를 고를 때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나 기사를 접할 때에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용자가 싫어할 만한 사실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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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버락 오바마로 바꿔치기 된 조던 필의 모습. 영상은 기사 하단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도로 발달한 미디어 편집 기술은 이미지, 영상, 나아가 음성까지 또한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편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회사인 버즈피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코미디언 조던 필의 얼굴을 버락 오바마로 바꿔치기하여, 마치 오바마가 ‘트럼프는 완전한 멍청이(a total and complete dipshit)’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공개했다. 또한 이 영상에서는 얼굴만 인공지능 기술로 바꿔치기 되었고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던 필의 훌륭한 성대모사 능력에 의존하고 있지만, 음성 합성 기술의 발달로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합성하는 일도 이미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7년 국내 개발자 콘퍼런스인 ‘데뷰’에서 손석희 아나운서나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습한 음성 합성 인공지능이 공개된 바 있다. 캐나다의 스타트업인 ‘Lyrebird’에서는 사용자가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음성을 합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디어 합성 기술이 발달하고 널리 퍼질수록 날조는 더욱 정교해지고, 쉬워지고, 빈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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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한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 안타깝게도 올해는 취소되었다고 한다.

한편,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Global Fact-Checking Summit)’에서는 세계의 언론 관계자들이 모여 가짜 뉴스에 대응할 방법을 의논한다. 영국의 단체 ‘풀 팩트(Full Fact)’는 영상에서 나타나는 발언을 통계 자료 등과 비교하여 사실인지 확인해주는 인공지능 기술을 소개하였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 미시시피 대학교 등의 연구진이 개발한 ‘클레임버스터(ClaimBuster)’ 알고리즘은 입력한 기사를 팩트 체크 언론 기관에서 보도한 기사와 비교해 신뢰도를 예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확인 기술 역시 검증의 기준이 되는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러한 정보의 선별과 구성은 여전히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3G에서 4G로, 또 개인용 컴퓨터에서 휴대 전화로, 미디어 기술은 더욱 빠르고 촘촘하게 작동하도록 발달했다. 빠르고 촘촘하게 구축된 통신망은 객관적 사실이건 날조된 거짓이건 구분하지 않고 통과시킨다. 어떤 정보를 보내고 받아 볼 것인지, 또 받은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 선택은 망이 아닌 사용자가 한다.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용자들은 더욱 많은 선택의 순간에 더욱 자주 놓이게 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판단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어떤 개인이 달면 가짜라도 삼키고 쓰면 입에 댈 기회조차도 사라져가는 탈진실적인 상황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판단 주체의 비판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사고를 전개할 사회적 도구와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미디어 기술 안에서 그러한 도구와 공간의 가능성을 찾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최민석 (minsukchoi@kaist.ac.kr)

출처
주1.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43474.html
그림 1. https://ko.dict.naver.com/#/entry/koko/965ce16b3b0d481fae6e6d00733456b7
그림 2. https://www.youtube.com/watch?v=cQ54GDm1eL0
그림 3. https://www.journalismfund.eu/node/6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