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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마커스 가비와 BLM 운동

August.2020 No Comment

올해 5월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BLM 운동은 기본적으로 비폭력 시위를 표방하지만, 일부 급진적인 세력의 경우 무장을 통한 대응을 주장하기도 한다. “현 체제를 불태우겠다”는 발언으로 트럼프의 비난을 산 호크 뉴섬(Hawk Newsome)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스탠스는 사실 과거부터 이어져온 흑인민권운동의 한 갈래인데, 본 기사에서 소개할 마커스 가비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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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가비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는 1887년 자메이카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가족들이 도서관을 운영했던 덕에 많은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성년이 되어서는 자메이카와 그 근방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는 동시에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흑인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가비는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건너가게 된다. 런던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그는 자메이카로 돌아간 뒤 1914년 만국흑인진보연합(UNIA)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UNIA은 흑인들의 자립을 목표로 했다. 기존의 흑인 민권 단체들이 백인들에 의해 세워진 체계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를 희망했다면, UNIA는 백인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경제적 독립을 원했다. 그렇게 힘을 키운 뒤 아프리카에 흑인들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적인 꿈이었다. 이를 위해 여러 사업을 운영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블랙 스타 라인(The Black Star Line)이라는 흑인 전용의 해운회사가 있다. UNIA은 미국까지 세를 확장하여 한때 수많은 추종자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에 퍼져 있는 흑인들을 모아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마커스 가비의 주장은 흑백분리주의와 닿아 있다. 그래서 자신과 뜻이 같은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Ku Klux Klan)와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극단적 행보는 다른 흑인 지도자들의 반감을 샀고,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창립자 두 보이스(Du Bois)는 가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대부분 엘리트인데다 흑인의 시민권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던 흑인민권운동 지도자들 사이에서 마커스 가비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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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마커스 가비의 급진적인 사상은 맬컴 엑스(Malcolm X)에게로 이어진다. 맬컴 엑스 역시 백인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인종 분리와 흑인들만의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과격한 마커스 가비와 보다 온건한 두 보이스의 구도가 맬컴 엑스-마틴 루터 킹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맬컴 엑스의 아버지 얼 리틀이 마커스 가비가 세운 UNIA의 간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맬컴 엑스는 그가 몸담았던 종교 집단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으로부터 가비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기독교를 백인의 종교로 여겼던 흑인들이 이슬람을 선택하면서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정통의 이슬람과는 많이 달랐다. 대표적인 지도자 일라이저 무함마드는 기존 이슬람 교리에 가비가 주장했던 흑인 네셔널리즘을 더해 본인들만의 독특한 종교를 구축했다. 교리로는 흑인만이 진정으로 축복받은 인간이라는 흑인우월주의를 포함한다.
전설적인 레게 스타 밥 말리의 종교로 알려진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 또한 가비의 영향권 안에 있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예수의 재림으로 여기는 종교로, 성경을 흑인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선민이 바로 흑인이라고 주장한다.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역시 자메이카 출신인 마커스 가비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흑인들의 아프리카 회귀, 그리고 백인에 대한 지배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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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브스 매터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슈퍼볼(Super Bowl)은 시합 뿐만 아니라 하프타임 쇼로도 유명하다. 2016년 당시 슈퍼볼 공연에 참여한 비욘세는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펼쳐 이슈가 됐다. 흑표당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옷과 검은 베레모를 착용하고, 꽉 쥔 주먹을 높이 드는 블랙 파워 살루트(Black Power Salute)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탄띠를 X자로 착용한 모습은 맬컴 엑스를 떠올리게 했다.
퍼포먼스가 논란이 된 것은 과거 흑표당의 주요 활동이 경찰에 대한 무장 순찰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 사건들과 맞물려 비욘세가 경찰 공권력을 공격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과잉 진압 사건을 염두에 둔 퍼포먼스가 맞겠지만, 그것이 어떤 악의를 갖고 이루어졌다기보다는 흑인들의 자존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무대였다는 게 본 기자의 생각이다.
흑표당은 과격했던 시절의 맬컴 엑스 영향을 크게 받은 집단이었다. 백인 경찰에 굴복하지 않고, 총기를 포함한 제복 차림으로 당당히 맞서는 모습에서 그 옛날 마커스 가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커스 가비는 뛰어난 연설가였지만 실속이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로 건너가겠다는 꿈을 안고 설립한 해운회사는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사기로 몰리고, 가비는 그로 인해 징역까지 살게 된다. 그럼에도 마커스 가비를 흑인 민권운동의 거인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억눌려 있던 흑인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히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소중하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본 기사에서 언급되는 흑인우월주의 같은 이야기들은 사실 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백인우월주의의 반작용임을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최근 BLM 운동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모습들 역시, 그저 일부 집단의 문제행동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흑백 갈등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

박동주 (pdj333@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