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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뉴럴링크, 뇌-기계 인터페이스와 매트릭스

October.2020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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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이룩한 기계 문명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일론 머스크는 이와 유사한 위협에 대한 가능성을 주장한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류는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 문명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기계 장치에 연결되어 가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실재하는 육신은 기계 문명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2014년 8월 4일 미국의 기업가 일론 머스크는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긴다. “인간이 디지털 초지능(Digital Superintelligence)을 위한 생물학적 부트 로더(Boot Loader)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기를 바란다. 안타깝게도 점점 더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또한 같은 해 10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있었던 연설에서 그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관계를 악마를 소환하는 일에 비유하며, 창작물 속에서 인간이 악마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소환하였다가 결국 통제권을 잃고 악마에게 종속되는 것과 같은 일이 현실의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도 벌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인공지능이 광대한 영역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추게 되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까마득한 수준의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고, 종래의 인류의 문명사 전체가 그러한 인공지능을 촉발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16년,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을 설립하면서 이러한 우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를 기계와 연결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일론 머스크는 인간의 뇌에 직접 연결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고 디지털 문명의 발전 속도에 걸맞도록 인간의 지능을 증강시키고자 한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 신경 세포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고,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직접 인공지능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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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기존의 뇌-기계 인터페이스. 왼쪽은 비침습적인 EEG이고 오른쪽은 침습적인 삽입형 전극의 모습이다.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뇌는 생명체에서 발생하는 호흡이나 소화 작용과 같은 생리 현상부터 인지나 학습과 같은 정신 작용에 이르는 온갖 기능들을 제어하는 신경 세포의 군집이다. 뇌는 신경 세포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신호의 전달을 통해 기능하는데, 이러한 신호 전달은 전기를 매개로 한다. 뇌-기계 인터페이스는 이러한 전기 신호를 측정하여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나아가 이러한 전기 신호를 제어하여 뇌의 작용에 개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대한 종래의 접근은 크게 대상의 신체에 상처를 주지 않고 체외에서 작동하는 비침습적인 방식과 신체에 상처를 내고 체내에 삽입하여 작동하는 침습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비침습적인 방식으로는 두피에 전극을 부착하여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뇌파 검사(electroencephalography, EEG)나 자기장을 통해 뇌 안에서의 혈류량을 측정하여 활성 정도를 가늠하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등이 있다. 신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낮은 시간/공간적 해상도, 각종 노이즈로 인한 측정 신호의 취약성, 신경 세포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채널 수, 입력만 가능한 단방향성 등의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침습적인 뇌-기계 인터페이스는 신경 세포에 직접 연결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시간적, 공간적 해상도를 보이고, 노이즈에도 훨씬 덜 취약하며, 신경 세포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침습적인 인터페이스는 두개골을 열고 신경 세포 조직에 여러 개의 바늘이 늘어선 전극을 삽입하는 시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두개골과 뇌에 직접적인 손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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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뉴럴링크에서 개발한 삽입형 뇌-기계 인터페이스.

개두술과 뇌 손상에 대한 위험성과 그로 인한 거부감으로 인해 침습적인 뇌-기계 인터페이스는 사지 마비나 시각 상실 환자들과 같이 제한적인 대상을 위해 제한적인 목적으로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2020년 8월 뉴럴링크에서 발표한 뇌-기계 인터페이스 ‘링크 0.9’는 폴리머 소재의 가는 실 형태의 부드러운 전극 다발을 사용하여 뇌의 손상을 줄이고 채널 수를 늘렸다. 또한 정밀한 시술이 가능한 수술 로봇을 개발하여 수술 속도를 높이고 위험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돼지에 대한 임상 시험 및 실시간 데모는 이미 마쳤고, 올해 말까지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기술의 발전은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천문학자 케플러의 발견들이 티코 브라헤의 방대한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질 수 있었듯이, 새로운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도입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는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작용의 분석과 이해, 나아가 제어에 대한 연구를 가속할 것이고, 이는 곧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발전으로 되먹임된다.
뉴럴링크는 신경 질환의 치료와 같은 의료적인 목적뿐 아니라 메시지 전송이나 음악 및 영상 재생과 같은 일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일론 머스크의 전망에 의하면, 새로운 지식을 다운로드하고 기억을 백업하고 의식을 복제하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처럼 기술적인 개입을 통해 인간을 개조하여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복제되고 연결되어 섞이고 엉킨 의식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스스로의 감정과 기억, 학습을 아우르는 정신 적용을 제어할 수 있게 되고 실재와 구별할 수 없는 가상 현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 없이도 기술은 발전하고 변화는 찾아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 현실인 매트릭스에 연결된다. 인류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매트릭스를 탈출하여 죽음을 각오한 투쟁이 이어지는 처참한 현실 세계로 향하고,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기계 문명의 압제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이러한 투쟁의 상당 부분은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재접속한 매트릭스 안에서 이루어지고,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 역시 매트릭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공지능, 나아가 시스템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려는 노력은 인간과 기술을 더욱 강력하게 결속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매트릭스를 피해 매트릭스로 향하고 있다. 스스로 던지는 물음들만이 기술의 홍수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최민석 (minsukchoi@kaist.ac.kr)

출처
그림 1. https://steemit.com/kr/@pyorinho/10-the-matrix
그림 2. https://sites.google.com/site/cm2fpgroup1/home/taishi-s-vision
그림 3. https://neurali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