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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사이버가수 아담과 에스파: 셀러브리티 혹은 로봇

December.2020 No Comment

그림 1. 사이버 가수 아담.

20세기 말 홀연히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을 기억하는가? 아담은 1998년 1집 [Genesis]으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사이버 가수다. 생년은 1997년이지만 나이는 1998년 당시 20세였고, 출생지는 EDEN이며 존 레논을 존경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에릭 클랩튼, 라이브 카페를 좋아했다. 이외에도 시력과 오행에 기반한 성격, 좋아하는 음식, 영화, 스포츠, 날씨, 자주 가는 곳까지, 웬만한 요즘의 아이돌보다도 상세한 내용이 적힌 프로필과 함께 데뷔했다. 같은 해에 한국에서는 아담에 이어 류시아, 사이다라는 이름의 사이버 가수가 데뷔하였으며, 그에 앞서 1996년 일본에서는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 가상 아이돌 다테 쿄코가 데뷔한 바가 있다.
당대의 사이버 가수란 어떤 개념이었을까? 그들의 외모는 폴리곤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목소리는 실제 사람이 녹음한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집약된 존재들이었고, 입 모양을 움직여 가사에 맞추는 데에도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대중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에서였는지, 아니면 세기말을 뒤덮은 명확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세기말 대한민국 화제의 중심이었고, 앨범을 내고 광고를 계약하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듯하다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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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에스파의 멤버들. 가운데의 넷은 현실의 멤버들이고, 양 끝의 넷은 가상의 아바타 멤버들이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2020년, 대한민국에서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데뷔한다. 1996년부터 H.O.T., S.E.S., 신화, BoA,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레드벨벳 등, 한국의 매 시대, 매세대를 풍미한 아이돌 그룹을 기획해 낸 연예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롭게 기획한 아이돌 그룹이다. 에스파는 한국, 일본, 중국 출신의 ‘현실 세계’에 살아 숨 쉬는 네 명의 멤버와 그들과 쌍을 이루는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네 명의 아바타 멤버로 구성된 그룹이다.
아담의 프로필처럼, 에스파에게도 설정이 있다.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 이수만이 설명한 바에 의하면 에스파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그들의 ‘또 다른 자아’의 발현인,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간다. ‘가상 세계’의 아바타 멤버들은 인공지능을 가지고 ‘현실 세계’의 멤버들과 대화하고 조력하며, 각자 세계의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세계를 오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이버 가수 아담의 시절보다 복잡하고 다중적인 가상성이 작용한다.
아담 세대의 사이버 가수의 가상성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성된 외모와 기획사에서 작성한 프로필, 그리고 정체성을 숨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가수들로 성립된다. 아담과 류시아, 사이다, 다테 쿄코의 공통점은 물리적인 현실에 존재하는 뿌리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기획사는 전기 신호나 인쇄된 이미지의 양식으로만 존재하는, 두꺼운 한 겹의 가상성을 지닌 존재를 만들어낸다. 현실에 존재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도 사이버 가수를 구성하는 재료로서의 역할이 크며, 실제 가수 개인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감은 독립적이고 단일하며 단순하다. 기획자가 부여한 이야기 안에서만 현실과 교류하며, 계획된 그대로의 표현만이 가능하다. 그들은 현실의 개발자, 기획자, 가수에 의해 탄생하여 디지털 세계에 홀로 뿌리내리고 있다.
이에 비해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들은 다중적인 가상성에서 근거한다. 그들은 컴퓨터 그래픽에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그들과 짝을 이루는 실체에 기반한 프로필과 목소리가 더해져 만들어진다. 본질적으로 아바타 멤버들은 현실 멤버의 ‘또다른 자아’로서 대칭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에스파의 데뷔곡 ‘Black Mamba’에도 잘 나타난다. 데뷔 무대 비디오에서 현실의 멤버들은 거울을 통해 아바타와 대면하며, 곡의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나의 분신을 찾고 싶어”,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라고 언급한다.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들은 20세기 말의 사이버 가수들과 달리 현실의 멤버에 뿌리를 일부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 다중적인 가상성이 발생한다. 그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현실 세계의 멤버들 역시 또다른 차원의 가상성을 가지고 있다.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멤버들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 개별적인 인격체에 기획된 가상성이 덧씌워진 존재들이다. 아이돌 멤버로서 그들은 곡과 가사, 가창, 안무, 스타일링, 이름, 영상과 사진, 스케줄 등,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거의 모든 부분이 멤버 개인이 아닌 SM 엔터테인먼트의 기획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그 기획 과정을 투명하게 알 수 없고, 가상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멤버의 이미지, 다시 말해 현실에 존재하는 아바타로서 그들을 접하게 된다.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사이버 가수라기보다 기존의 아이돌, 나아가 대중 문화 기획의 관점에서 형성된 엔터테이너의 이미지 혹은 아바타의 개념이 기술을 바탕으로 감각적으로 재현된 존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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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자이언트스텝에서 진행한 디지털 휴먼 ‘PROJECT VINCENT’

이러한 감각적 재현은 고도로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기반한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자이언트스텝’은 고화질의 컴퓨터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렌더하고 반응할 수 있는 엔진을 이용하여 다양한 인터랙티브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이다. 자이언트스텝에서는 디지털 휴먼 ‘PROJECT VINCENT’를 통해 머리와 피부를 비롯한 인간의 신체 전체를 실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실시간으로 표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이언트스텝은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들의 시각 요소를 만들었으며, 에스파의 아바타 멤버들은 이전의 사이버 가수들이 머무르던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 보다 생동감 있는 존재로 구현되었다.
여기에 더해 아바타 멤버들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언급한 ‘또다른 자아’로서 독립적으로 기능하려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과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현실 멤버의 대칭적 존재로 출발했을 지라도, 기획자의 이야기와 개발자의 명령어를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감각, 인지, 사고 및 표현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현실의 멤버나 팬덤과 소통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최근 OpenAI에서 공개한 ‘GPT-3’로 대표되는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이러한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습 기반의 반응형 시스템이 아니라 2018년 열린 행사 ‘4차 산업 혁명, 로봇 소피아에게 묻다’에서 시연된 로봇 소피아와 같이 미리 준비된 반응을 교묘하게 재생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획사에서 의도하고 팬덤이 요구하는 반응만을 조건에 따라 반복한다면 그들의 본질은 20세기 사이버 가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기존의 기획된 엔터테이너의 가상성과 닮아있다.
다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같은 행사에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미래는 셀러브리티와 로봇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과연 누가 셀러브리티이고 누가 로봇인가. 다중적인 가상성에 뿌리내린 21세기의 셀러브리티, 혹은 로봇이 기획된 이야기와 입력된 명령어 너머에서 주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민석 minsukchoi@kaist.ac.kr

출처
그림 1.http://imgnews.naver.com/image/109/2006/04/07/200604070902552101_1.jpg
그림 2. https://www.youtube.com/watch?v=Ky5RT5oGg0w
그림 3. http://giantstep.co.kr/view/work_view.php?seqno=826&m_seq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