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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Review] 카이스트에서 채식하기

December.2020 No Comment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2008년의 15만명과 비교할 때 10배나 늘어난 수치다. 건강상의 이유로, 종교적 신념으로, 개인의 가치관 때문에, 또는 그저 새로운 시도 삼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막상 채식을 시작하려면 식습관을 어디서부터 바꿔야할 지 막막하다. 올해 3월 식품음료신문이 ‘채식’에 관한 블로그 문서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인 인식의 첫 번째 요인은 ‘불편하다’, 두 번째 요인은 ‘제한적이다’였다. 채식 문화가 널리 자리잡지 못한 한국에서는 직접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채식으로만 매 끼니를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많은 끼니를 학식에서 해결해야 하는 KAIST는 어떨까? 본 기자가 짧게나마 채식을 해보며, KAIST의 채식 환경은 어떤 지 조사해보았다.

채식주의에 입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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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채식주의에는 다양한 분류가 있다 (사진출처=경기도청)

먼저 채식주의(Vegetarianism)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히 채식주의라고 하면 완전한 채식만을 하는 비거니즘(Veganism)을 떠올리지만, 채식주의는 그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고기는 먹지 않아도 우유, 달걀, 유제품을 섭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유나 유제품까지는 먹는 것을 락토 채식(Lacto-vegetarianism), 달걀까지는 먹는 것을 오보 채식(Ovo-vegetarianism)이라고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육류도 먹는 세미 채식주의(Semi-vegetarianism)도 있다.
비거니즘의 경우 식문화를 넘어서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비건 생활습관을 가진 이들은 화장품이나 의류 등의 상품에서도 동물이 들어가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국내의 경우 한국비건인증원에서 이러한 제품들을 검증하고 있으며, 검증절차가 끝난 제품들에는 비건인증 마크가 주어진다.
본 기자는 처음에 완전한 비건식에 도전해보려고 했지만, 자료를 조사하면서 비건에 해당하는 식품들이 생각보다 적음을 깨달았다. 언뜻 보기에는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이라도 제조공정에서 육류가 포함되어 있고는 했다. (이를 테면 김치의 경우, 젓갈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건식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기사의 목적은 KAIST의 채식 환경을 전반적으로 알아보는 것이기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면 유제품이나 달걀도 섭취하기로 하였다.

KAIST 안에서 채식하며 느낀 것들

2주 동안 채식을 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는 채식 식단이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교내의 경우 풀빛마루는 물론, 롯데리아와 서브웨이에서도 채식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학교 밖으로 나간다면 채식 메뉴를 지원하는 식당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제품을 사먹는 대신 식재료를 사서 간단히 조리할 수도 있다. 마켓컬리와 같은 e-커머스 업체에서 다양한 채식 제품을 팔아, 냉장고나 조리기구가 있다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빵이나 샐러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고, 롯데리아에서도 때마침 비동물성 고기를 이용한 버거를 내놓았다. 편의점에서도 채식 도시락을 판매 중이었고 조금 멀리까지 나가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중국음식, 칼국수, 피자 등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상품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라면이었다. 풀무원과 오뚜기에서 각각 비건인증을 받은 라면을 출시했는데,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채식주의 식단에서 흔치 않은 정크푸드(?)였다.
서두에서 말했듯, 많은 사람들은 채식을 ‘제한적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채식 식단은 맛, 종류, 영양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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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식료품을 판매하는 ‘마켓컬리’에서는 다양한 채식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출처=마켓컬리 캡처화면)

하지만 식단 자체는 다양함에도, ‘식사 메뉴를 정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찾아가는 경우보다는 식사 때가 되어서 근처의 학식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더 많다. 채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두차례야 학교 밖의 채식 메뉴를 찾아가며 끼니를 때울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을 앞두고 간단히 배를 채울 때, 일이 많아서 간편한 음식을 사와 컴퓨터 앞에서 먹을 때,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있다가 저녁 시간을 놓쳤을 때는 ‘내가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학생을 위한 조리공간이 없는 KAIST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이 육류를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다. 앞서 얘기했던 김치의 예처럼, 동물로 만든 조미료의 경우 음식만 보고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엄격한 비거니즘의 경우, 식재료 뿐만 아니라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동물성 제품이나 다른 식품과 같은 조리기구를 쓸 때 생기는 교차오염까지도 신경을 쓴다. 직접 조리해 다니자니 상황의 여의치 않고, 채식 식단으로 보이는 것을 사먹자니 불안해서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채식은 종종 시도해볼만한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채식 메뉴도 다양하고 육류 위주의 식단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풀타임으로 채식을 하기에는 아직 쉽지 않다고 느꼈다. 신경써야 할 점도 많고, 식습관을 넘어서 생활 양식 전반을 바꾸게 된다. 채식은 확실한 동기가 있지 않는 이상 꽤나 수고스러운 일이다.

채식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 시장을 기다리며

이번 체험을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곳은 롯데리아와 서브웨이였다. 정 먹을 게 없을 때, 언제든 찾아가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힘이 되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삼양식품, 풀무원, 나뚜루 등 많은 식료품 업체들이 비건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비건 식품들이 늘어나자, 이마트 일부 점포에서는 비건 식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채식주의존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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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롯데리아에서는 비동물성 버거를 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비건 인증을 받지는 않은 제품이지만, 비건 푸드의 대중화를 위한 교두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 모두가 비건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롯데리아의 경우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고기 햄버거와 같은 조리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교차 오염의 여지도 크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대형 체인이 비동물성 패티를 판매했다는 점을 높이 사는 이들이 많다.
롯데리아 측은 이런 우려에 대해 주 고객층이 엄격한 비건주의가 아닌, 국내 일반인과 플렉시테리언(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임을 밝히고 있다. 국내의 채식 시장은 해외에 비해 규모도 작고 가야할 길도 멀지만, 다양한 방향으로 그 판을 확장하고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채식 시장의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채식 시장이 충분한 자생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개개인의 기호를 반영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남궁민상 (whovian@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