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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Opinion] 사이버펑크는 지금인가?

March.2021 No Comment

주의. 본 기사는 게임 <사이버펑크 2077>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 1. 게임 <사이버펑크 2077>.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은 사이버펑크적인 서사의 윤곽은 그려냈지만, 그 내용을 성공적으로 담아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게임의 성취와는 별개로, 불완전한 사이버펑크 서사를 통해 우리는 <사이버펑크 2077>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2020년 12월 10일,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이 발매되었다. 게임 <더 위쳐 시리즈>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던 게임 제작사 CDPR의 최신작이었던 만큼, <사이버펑크 2077>은 제작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다양한 화제거리를 남겼다. <매트릭스 시리즈>, <존 윅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캐스팅과 화려한 시네마틱 영상, 몇 번의 발매 연기, 발매 직전의 격렬했던 기대감과 마침내 공개된 게임의 설익은 완성도의 간극, 출시 하루 만에 천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회수하였음에도 이어졌던 불만과 환불, 어두운 전망으로 인해 수개월에 걸쳐 결국 반토막난 회사의 주가 등. 이처럼 뜨거운 이슈들 속에서 게임 자체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작품의 테마인 ‘사이버펑크’는 지나간 유행 취급을 벗어나 인터넷 상에서 밈(meme)으로 새로이 자리매김하였다.

사이버펑크 밈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번째는 유머로서, 현대적인 기술과 그에 대비되는 착오적이거나 조악한 요소가 함께 나타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사이버펑크 2077>의 로고를 올려놓거나, <사이버펑크 2077> 게임 내에서 버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현실적이고 돌발적인 상황들을 포착하여 이것이 미래의 모습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연속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나 로봇, 암호 화폐와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소식을 공유하면서 ‘사이버펑크는 지금이다’라고 덧붙이는 식으로, 불가해한 기술에 대한 경외와 흥분, 막연한 소외감을 담은 표현으로 쓰인다.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되는 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발전된 기술과 소외된 인간 혹은 상황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는 곧 사이버펑크의 핵심이다.

그림 2. 사이버펑크 밈. 현대적인 기술과 괴악한 상황이 어우러진 사진에 <사이버펑크 2077> 로고를 배치했다.

사이버펑크는 1940년대에 시작된 과학 기술 사조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1970년대에 시작된 대중문화 사조인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1980년 미국 작가 브루스 베스키(Bruce Bethke)가 쓴 SF 소설의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블레이드 러너>, <뉴로맨서> 등의 작품을 통해 장르로서 정립되었다.
사이버네틱스는 조절기, 방향타를 뜻하는 그리스어 퀴베르네테스(Κυβερνήτης)에서 기원한 단어로, 신경과학과 제어 시스템, 네트워크 등의 분과 학문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를 뜻한다. 생명체와 기계, 사회를 비롯한, ‘목적을 지닌 메커니즘’을 대상으로 하며, 당시에는 동떨어져 있던 생리학, 기계공학, 사회과학의 학문 분야를 아울러 ‘통신’과 ‘제어’라는 공통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기계로 대표되는 요소들을 연결하여 총체적인 시스템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그 시스템을 조절하는 것에 주요한 관심을 두었다.
펑크는 주류 문화에 대한 노동자 청년들의 반항으로 시작되었다. 펑크 문화 주체들의 시각에서, 당대의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섬세한 문화 양식들은 상업적이고 권위적이며 엘리트적인 것이었다. 펑크족들은 거칠고 단순하며 직설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창백한 화장, 화려하게 염색하고 뾰족하게 세운 머리, 플라스틱 혹은 가죽 재질 옷, 단순하고 반복적인 연주, 거친 음향과 사회 고발적이며 허무주의적인 가사의 노래들, 폭력적인 공연 퍼포먼스가 그들의 문화를 대표했다. 펑크 문화는 시스템에 반항하고 주류 문화의 권력에 도전하는 동시에 비관적이며 허무주의적이었다. 펑크 문화의 극단적인 양식은 지속 가능한 대안보다는 반문화적인 반달리즘(vandalism)에 더 가깝다.
사이버펑크는 사이버네틱스와 펑크라는 두 장면이 반투명하게 겹쳐지면서 나타난다. 첫번째 장면에는 발전된 기술이 있다. 개체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통제가 이루어진다. 두번째 장면에는 소외된 이들의 반항이 있다. 시스템에서 소외된 존재들은 풍요에 도달할 수 없으며 시스템은 그들을 착취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대한 반감으로, 반감은 일탈적인 반항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은 일탈적 반항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일탈로는 견고한 시스템이 드리운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 체제에서 소외된 존재들은 대안적 현실에 이르지 못하고, 무력화되거나 추방된다. 그러나 이러한 반항의 서사는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조명하는 동시에, 비극적 결함을 끌어안고 자유를 추구하는 주체적인 인간성의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내며 쾌감을 선사한다. 통제가 심하고 반항이 격렬할수록 과정의 쾌감과 결말의 비극성은 부각되고, 벌어진 격차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그 간극만큼의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림 3. 대표적인 사이버펑크 작품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

사이버펑크가 정립되었던 20세기 말 미국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는 한편, 신자유주의 담론의 대두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금융 자본주의와 대기업에 대한 우려와 제도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느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었다. 당대의 SF 작가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상상력을 보태어, 발전한 기술과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성에 주목했다. 사이버펑크를 차용한 작품에서는 인간의 신체가 기계로 쉽게 교체되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섞여서 살아가며, 촘촘한 네트워크는 모든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고 가상 현실을 구성한다. 폭발적인 기술 발전을 주도한 조직들은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 전반을 통제한다. 발전된 기술, 확장된 가상 세계, 시스템에 집중된 권력은 인간성을 희석하고, 개인을 도구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을 넘어 도달한 21세기는 생각보다 심심했다. 인터넷은 생각보다 느렸고,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나 안드로이드는 없었으며, 사이버 세상은 매트릭스가 아니라 싸이월드, 버디버디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 속에서 사이버펑크는 먼지 쌓인 상상이 되어갔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었고, 이미지 인식이나 바둑과 같은 특정 과제에서 인간보다 높은 성과를 보이는 인공지능이 나타났으며, 통화 기록과 인터넷 사용 정보가 정부 기관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감청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애플, 구글, 테슬라와 같은 거대 기업들의 출현으로 세계 기업 순위는 재편되었으며,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사이버 공간은 더욱 다양한 양식과 높은 해상도를 갖추는 동시에 우리 일상에 깊게 뿌리내렸다. 이렇게 도래한 2010년대는 20세기 말 사이버펑크에서 그렸던 미래와 닮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제작된 <사이버펑크 2077>의 줄거리는 표면적으로는 사이버펑크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국제적인 분쟁 속에서 무기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세계 최고의 군수 기업 ‘아라사카’는 인간의 기억과 인격을 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 ‘렐릭’을 개발하여, 내면에서부터 인간을 통제하고자 한다. 주인공 ‘V’는 빈곤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아라사카로부터 렐릭을 강탈하는 범죄에 가담하였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렐릭에 저장되어 있던 인격이 천천히 자신의 인격을 덮어써가는 시한부 인생이 된다. V는 아라사카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사라져가는 자신의 인격을 구하기 위해 가상 현실을 넘나들고 아라사카의 연구소를 습격하는 등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애초에 원했던 부와 명성도 어느정도 얻게 되지만 결국 시한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떠나가는 결말을 맞이한다. 거대 기업과 폭력이 지배하는 시스템은 건재하고, 시스템에 대한 V의 반항은 어떤 형태로든 무력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를 채우고 있는 세부적인 내용과 게임 플레이 경험을 살펴보면, 기술을 매개로 주체성을 추구해나가는 사이버펑크적인 서사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임의 중심 이야기는 거대 기업 아라사카와 주인공 V의 대결이지만, 그 과정에서 V의 선택이 주체적으로 개입하는 요소는 거의 없다. 선택지가 야기하는 변화는 미미하다. 단방향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V는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진 상황에 끌려 다닐 뿐이다. 게임 속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거대 기업에 대한 비판도, 인격을 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도 몇 줄의 대사와 전투 시퀀스로 지나갈 뿐이고,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펑크적인 반항은 주체적인 선택과 고찰이 결여된 채 캐릭터의 화려하고 독특한 차림새나 미래적인 무기로 벌이는 자극적인 전투로 주로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사이버로 포장된 펑크의 양식만을 남긴다.

사이버펑크에서 사이버가 상징하는 기술은 인간 주체에 대한 통제와 제어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펑크가 상징하는 반항을 통해 주체성을 추구하는 도구로 나타나기도 하며, 나아가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기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기술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기술이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인 양식으로 바꾸어 간다고 해도, 주체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최민석 minsukchoi@kaist.ac.kr

출처
그림 1. https://www.cyberpunk.net/build/images/social-thumbnail-ko-bd3172d7.jpg
그림 2. https://i.pinimg.com/736x/b8/e1/7c/b8e17cea50d060311cdd01038cd44ef7.jpg (왼쪽)
그림 2. https://i.imgur.com/fapl8UN.png (오른쪽)
그림 3.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9/9f/Blade_Runner_%281982_poster%29.png (왼쪽)
그림 3.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c/ca/Ghostintheshellposter.jpg (오른쪽)